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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척하는 사람

by 비취인가 2022. 6. 18.

가가스반다스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하자면 나는 아베 토모미 작가의 가가스반다스라는 단편이 떠오른다. 어린 미취학 아동 세 명이 길을 같이 걷고 있다. "너희들도 가가스반다스 하지?" "물론이지, 가가스반다스 안 하는 애가 요즘 어디 있니?" 두 아이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중, 한 아이가 옆에서 의아하게 물어본다. "저기, 그런데 가가스반다스가 뭐야?" 그 말에 두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란 표정을 짓고는 "가가스반다스를 모른다고? 농담하는 거지!"라며 자신들의 가가스반다스에 대해 더욱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다. 한 아이는 그 대화에 소외되는 것이 싫어 사실은 자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항상 하고 있었는데 장난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작품의 끝까지 결국 가가스반다스가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불쾌한 감정을 밑바닥에서 끄집어내는 재능이 있는 아베 토모미 작가의 단편 가가스반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우화에는 "남들이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니까 나도 적당히 안다고 하고 싶은 심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나는 남들과 철학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이런 종류의 기묘한 느낌을 받는다. 이 사람들은 정말 철학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철학을 한다고 말하는 걸까?

철학
네이버 사전에 '철학'을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은 뜻이 나온다. "인생, 세계 등등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 모호하다. 사전의 부연 설명에도 대상이 일정하지 않은 신기한 학문이라고 나와 있다. 철학의 철(哲)자는 본래 어질 현(賢), 알 지(知)와 같은 뜻이다. Philosophy(철학)이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인 '필로소피아'에서 유래하였고, 이는 "지혜에 대한 사랑"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철학은 앎, 지혜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무엇에 대한 앎인가? 네이버 사전이 말하는 대로 인생과 세계에 대한 앎이라고 말해도 크게 반발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세계에 대한 앎을 추구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세계에 대한 탐구
우리의 세계는 난해하다. 신을 믿지 않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완전히 해석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신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수학의 완전한 체계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힐베르트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가 증명되면서 그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증명하지 못할 것투성이인 세상에 살고 있다. 양자역학의 해석을 빌리면 세계는 파동 함수로서 존재하고 우리가 관측하는 순간 파동 함수는 붕괴하며 물리량으로 변화한다. 즉 우리는 관측하기 전에는 예측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세계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논리적이고 무결함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수학도, 이 세계를 이루는 학문인 과학도 마치 우리 호모 사피엔스에게 "완전함은 없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인간이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들여다보아야 하는 방향은 어디인가? 나는 철학이 그 답을 인간 그 자체에서 찾았다고 생각한다.

인간
철학은 다시, 인간에게로 눈을 돌린다. 드넓은 세계만큼이나 인간에게서 나오는 광활한 가치와 사상의 힘에 주목한 것이다. 인간의 사색과 대화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놀라운 힘이 있어서 항상 새로운 질문을 던지곤 했다. 질문과 대화가 핵심이다. 좋은 질문에 집단 지성으로 답해가는 과정이 인간의 의식 수준을 끌어올린다. 가령 인간은 왜 삶을 이어가려는 것인가? 생존 본능, 나아가 자손을 남기려는 본능은 왜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들로부터 윤리학과 사회학이 탄생했고 우리의 삶의 질이 더 높아졌다. 인간이 인간의 삶에 대해 탐구하며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것. 그것을 철학이라고 한다.

철학하는 척하는 사람, 철학하는 사람
21세기의 1분기를 곧 지나려고 하는 우리네 삶에, 철학이 메말라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철학을 공부하는 행위가 마인드셋을 자리 잡게 만들어주고 일상생활을 도와준다는 뭐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 왜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들을 그냥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냥 남들이 다 잘살고 있으니까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종류의 사유를 해 본 사람과 막연하게 사는 사람은 삶의 밀도가 다르다고 확신할 수 있다.



+철학에 입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면 야마구치 슈 선생님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추천한다. 철학 입문서로 가장 적합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군대에서 진중문고로 있어서 읽었는데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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